
3화
틈새로 새어 나오는 것들
“필름이 끊긴다는 게…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은 몰랐다.”
경찰서 안 작은 회의실. 이서연이 가져온 노트북 앞에 앉아, 나는 CCTV 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있었다. 흐릿한 영상 속 나는 어깨를 낮게 떨고 있었고, 그 옆의 남자는 모자에 마스크, 움직임만으로도 날카로운 인상이 느껴졌다.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했다.
내가 저렇게 어깨를 숙이고 걷는 걸 스스로 본 적이 없다.
낯설었다. 분명 내 모습인데, 마치 타인의 걸음처럼 느껴졌다.
“익숙해 보여요?”
서연의 질문은 조심스러웠다.
나는 고개를 젓고,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
“솔직히… 아무것도요. 그런데… 기분이 좀 이상해요. 저 남자. 영상에선 얼굴도 안 보이는데, 느낌이 들어요. 어디선가…”
서연은 노트북 화면을 잠시 멈추고, 내 얼굴을 살폈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단정하고 또렷했다. 의심하지도, 믿지도 않는 얼굴. 딱 변호사의 얼굴이었다.
“기억나지 않는 밤에 누군가가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조건이에요.”
그녀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당신이 스스로 기억해내는 게 중요해요. 조금씩이라도 좋으니까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눈을 감았다.
새벽 공기, 어둠, 어딘가 흔들리는 불빛,
그리고… 누군가의 소리.
희미하게—
정말 아주 희미하게—
귓가에 쏘아붙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네가 그렇게까지 해놓고, 모른 척한다고?”
그건, 나한테 한 말이었다.
순간 머리가 다시 울렸다.
눈을 번쩍 떴다.
서연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났어요?”
“잠깐… 목소리 같았어요. 저한테 뭐라고 하는… 남자 목소리. 분노? 비난? 뭔가, 오래된 원한 같은…”
나는 말끝을 흐렸다. 말로 옮기는 순간, 그 감정이 뚝 끊긴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연은 천천히 무언가를 노트에 적었다. 그 필기 소리가 괜히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날 오후.
서연은 날 데리고 피해자 민성재의 카페가 있던 자리로 갔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운영 중이던 곳은, 이미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그 사람, 여기서 혼자 일했어요. 말이 없고 조용했지만, 단골은 꽤 있었죠.”
서연은 조용히 덧붙였다.
“몇 달 전부터 이상했대요. 혼잣말을 하거나, 누군가와 다투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고…”
나는 가게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몽롱한 눈, 부어오른 얼굴, 굳은 턱선. 도무지 그와 무슨 접점이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제가… 이 사람을 진짜로 알고 있었을까요?”
입을 떼며 묻자, 서연은 처음으로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대답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선 ‘안다’는 증거일 수 있어요.”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기억은 편리하게 작동하니까요. 특히, 지우고 싶은 게 생기면 더 그렇고.”
그 말이 마음에 박혔다.
내가 뭔가를—
고의로 지운 걸까? 아니면, 누군가 내게 지우게 만든 걸까?
돌아오는 길.
서연이 갑자기 운전을 멈췄다.
그리고 핸드폰을 내게 건넸다.
“이 사진, 경찰이 보내온 겁니다. 제보자가 협조적으로 나와서, 얼굴 사진이 확보됐어요.”
나는 화면을 바라봤다.
익숙한 얼굴.
몇 초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히 아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디서 봤는지,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떠올릴 수 없었다.
모호함이 공포로 바뀌는 데는 단 몇 초면 충분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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