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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AI 웹소설

[웹소설 | 단편 | 범죄•스릴러] 침묵(4)

by rien_d 2025. 3. 31.
침묵

4화
기억은 거짓말을 한다



꿈을 꿨다.
짧고, 어둡고, 불편한 꿈이었다.

어떤 남자의 뒷모습. 쪼그린 자세. 등 뒤로 새어 나오는 흐느낌. 그리고, 조용히 찢어지는 무언가의 소리.

꿈 속에서 나는 그 남자를 부르려다 멈췄다.
내가 왜 그를 알고 있는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는데도, 확실히 죄책감 같은 게 가슴 깊숙이 눌려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이마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몸은 무겁고, 머리는 텅 빈 느낌. 하지만 그 장면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사진 앱을 뒤졌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혹시 무언가… 익숙한 배경이라도 찍힌 게 있을까 싶어서.

그리고 스크롤을 내리다, 한 장에서 손이 멈췄다.

3년 전, 고등학교 동창회.
그 사진 속, 구석에 서 있는 한 남자.

민성재였다. 확신할 수 있었다. 어렴풋했지만, 그 인상이, 그 표정이 정확히 겹쳤다.

“거짓말이었네. 나, 이 사람… 알고 있었잖아.”

스스로에게 말하면서도 숨이 막혔다. 기억을 잊은 게 아니라, 덮은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건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었다. 그 순간, 휴대폰으로 문자가 한 통 들어왔다.
이서연이었다.

[민성재의 병원기록, 확보했어요. 지난 1년간 상담과 약물치료 받은 이력이 있습니다.]

나는 통화를 걸었다.

“무슨 상담이었어요?”

“공황장애, 불면,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

그 단어들이, 마치 내가 받아야 할 진단명처럼 들렸다.







오후, 우리는 고등학교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 이서연은 노트북을 펼쳐 몇 가지 자료를 보여줬다. 그 안엔 민성재의 상담 기록 일부,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인터넷에서 검색한 키워드들이 있었다.

“기억을 되살리는 법”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폭로 없이 복수하는 방법”

나는 화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 사람, 나한테 뭔가 당했던 건가요…?”

서연은 이번에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도윤 씨, 고등학교 시절에 어떤 일 있었는지… 기억 안 나세요? 어떤 특정 학생을 따돌렸다거나, 싸움, 혹은… 사고 같은 거.”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말 자체가 내 안에서 무언가를 긁어냈다.
지우고 있었던 감각, 그 시절의 공기, 어딘가의 소음.

“아니요… 아니, 그런 일은…”
말하면서도 확신이 없었다.

서연은 눈을 깔며 물었다.

“도윤 씨, 저… 혹시 우리가 고등학교 동문이었던 건 기억 안 나세요?”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그렇게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동문이요…?”

서연은 아주 짧게 웃었다.

“그땐 제가 말을 아꼈던 것 같네요. 뭔가 얽혀 있다는 느낌을 주면, 방어부터 하실까봐.”

그 웃음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엔 무언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안심 같은 게 섞여 있었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불편했다. 서연의 태도, 표정, 말투… 모두 논리적이고 매끄러운데, 어느 한 부분이 미세하게 어긋나 있었다.

그리고 그 어긋남이, 지금은 두려움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