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AI 웹소설

[웹소설 | 단편 | 범죄•스릴러] 침묵(5)

by rien_d 2025. 4. 1.
침묵

5화
그날, 우리는 봤다




“한도윤. 민성재. 그리고 나. 우리는 모두 같은 학교에 있었고, 같은 사건의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 중심에 누가 있었는지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도윤은 기록들을 계속 읽었다. 이서연이 제공한 민성재의 병원 이력에는, 학교에 대한 단어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날 그 복도.”
“눈앞에 있던 것들이 사라졌고, 대신 낙서가 남았다.”
”그들은 몰랐겠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문득 어떤 장면을 떠올렸다. 복도 끝, 창가 자리, 누군가 혼자 앉아 있던 모습. 그리고… 내가 그를 피해 지나쳤던 기억.

“서연 씨. 성재,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왜 그렇게까지…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서연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3학년 때 있었던 일, 기억 안 나세요? 체육관 창고. 11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 단어들이 나를 과거로 끌어당겼다. 내가 애써 지워온 어떤 기억이, 문득 틈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어두운 창고. 누군가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나였다.

“그게… 진짜로 있었던 일이에요?”
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물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죠? 나, 누굴—”

“그날, 도윤 씨는 누굴 때리지 않았어요.”
서연이 말을 끊었다.

“대신, 가만히 있었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성재가 맞고 있을 때, 누가 문을 열려고 할 때, 그냥… 보고 있었죠.”

그 말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날아든 것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해친 것도, 구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민성재는 끝까지 기억한 것이다.

서연은 이후 말이 적어졌다. 우리는 각자에게 매달린 생각을 곱씹은 채, 조용히 차를 타고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민성재가 살던 고시원. 작은 방, 눅눅한 공기, 비좁은 침대. 책상 위에 낡은 노트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엔 한 문장이 반복되어 적혀 있었다.

“한도윤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한도윤은 그날, 날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문장은 점점 흐트러졌다. 마지막에는 거의 글씨가 무너진 상태였다. 나는 숨을 삼켰다. 그리고, 그 페이지 뒷면에 붙은 작은 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목격자의 얼굴.

그리고, 성재와 너무 닮은 인상.

“이 사람…”

나는 사진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 사람, 혹시… 형제예요?”

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민정우. 민성재의 동생이에요. 그리고 이번 사건의 제보자.”

진실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훨씬 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