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 단편 | 범죄•스릴러] 침묵(5)
5화그날, 우리는 봤다“한도윤. 민성재. 그리고 나. 우리는 모두 같은 학교에 있었고, 같은 사건의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 중심에 누가 있었는지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도윤은 기록들을 계속 읽었다. 이서연이 제공한 민성재의 병원 이력에는, 학교에 대한 단어들이 반복되고 있었다.“그날 그 복도.”“눈앞에 있던 것들이 사라졌고, 대신 낙서가 남았다.””그들은 몰랐겠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나는 문득 어떤 장면을 떠올렸다. 복도 끝, 창가 자리, 누군가 혼자 앉아 있던 모습. 그리고… 내가 그를 피해 지나쳤던 기억.“서연 씨. 성재,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왜 그렇게까지…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거예요?”이서연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그리고, 작게 말했다.“3학년 때 있었던 일, 기억 안 나..
2025. 4. 1.
[웹소설 | 단편 | 범죄•스릴러] 침묵(4)
4화기억은 거짓말을 한다꿈을 꿨다.짧고, 어둡고, 불편한 꿈이었다.어떤 남자의 뒷모습. 쪼그린 자세. 등 뒤로 새어 나오는 흐느낌. 그리고, 조용히 찢어지는 무언가의 소리.꿈 속에서 나는 그 남자를 부르려다 멈췄다.내가 왜 그를 알고 있는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는데도, 확실히 죄책감 같은 게 가슴 깊숙이 눌려 있었다.아침에 눈을 뜨자 이마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몸은 무겁고, 머리는 텅 빈 느낌. 하지만 그 장면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사진 앱을 뒤졌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혹시 무언가… 익숙한 배경이라도 찍힌 게 있을까 싶어서.그리고 스크롤을 내리다, 한 장에서 손이 멈췄다.3년 전, 고등학교 동창회.그 사진 속, 구석에 서 있는 한..
2025. 3. 31.
[웹소설 | 단편 | 범죄•스릴러] 침묵 (1)
1화피로 시작된 아침그날 아침 눈을 뜬 순간, 지옥은 시작되었다.머릿속이 마구 뒤틀린다. 마치 누가 망치로 뒷통수를 수십 번 두들긴 것처럼, 통증이 울컥울컥 밀려온다. 눈꺼풀을 겨우 들어올리자, 낯선 천장이 흐릿하게 시야를 채운다.노란 형광등 아래로 때가 낀 벽지, 얼룩진 커튼, 그리고 금이 간 천장. 숨을 들이쉬는 순간 코를 찌르는 싸한 냄새가 폐로 밀려든다. 곰팡이, 담배, 땀…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불쾌한 철냄새.이곳은 내 방이 아니다. 이 냄새도, 이 공기도, 이 낯선 공포도 전부 내 것이 아니었다. 머리를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데, 그 순간. 왼팔 소매가 시야 한가운데를 스치며 지나간다.피.피다.심장이 세차게 요동친다. 붉게 말라붙은 얼룩이 셔츠 소매를 타고 굳어있다. 심지어 피는 단순히 묻..
2025. 3. 28.